안상훈의 전시 <모두와 눈 맞추어 축하 인사를 건네고>는 이제까지 작가가 제작했던 모든 작업들 하나하나에 건네는 고마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본인이 제작한 작업들을 돌아보고자 하는 전시 의도에 맞게 실제 캔버스 작품이 전시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지만 이와 달리 작가는 전시장에서 현장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 덕에 시적이고 사려 깊은 제목의 전시는 가변적이고 즉흥적인 풍경으로 가득했다. 다층의 레이어와 볼륨을 가진 점, 선, 면, 덩어리, 얼룩 등이 저마다의 속도와 흐름으로 전시장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수분을 머금은 구름처럼 어느 순간 상태를 변화시키고 에너지를 방출하고 흡수할 것 같은, 임계지점에 다다른 듯 포화되고 팽창과 수축이 유동하는 가변적 물질의 세계를 펼쳐 놓은 것 같다. 추상의 이미지마저도 환영으로 읽으려고 하는 관람자적 충동으로 그의 회화풍경의 인상을 읊어보기도 하지만 그리 신통치 않다. 어떤 대상이나 내러티브를 불러오기 보다는 불분명하고 암묵적인, 즉흥적이고 가변적인 감각의 총체로서 그 자체로 경험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가변성의 감각은 작업의 즉흥적 생성과정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보잘것없고 내구성 약한 비닐을 늘어뜨리고 합판을 자르고 그 위에 물감을 칠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미리 주문해 놓은 물감과 온갖 재료들을 가지고 전시 설치를 위해 주어진 6일 동안 이 전시장에 머물면서 자르고 붙이고 그리면서 작업을 진행했다. 상당히 즉흥적이고 산만하고 그러면서 오롯이 몰두했을 작업과정을 전시장에 들어서는 관객이라면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별도의 사전 스케치나 에스키스 없이 바로 시작하여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임의적 결정의 순간에 끝맺는다. 즉흥과 우연으로 작업이 완료되고 전시 후에 소멸되어 재생이 불가능할 거라는 것도 직감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포함하여 최근 작업에서 가변적 풍경이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은 그가 회화성을 탐색하는 작업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상훈은 본인의 미술 행위의 핵심에 회화라는 매체적 실천을 위치시킨다. 회화적 조형과 감각을 공간에 확장시키면서 회화적인 것을 탐색해 온 작가다. 회화라는 장르는 어쩔 수 없이 모더니즘적 매체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알다시피 모더니즘적 개념에서는 회화를 엄밀히 규정하고 회화가 아닌 것은 배제하는 이분법적 위계에 따라 환원하고 정제하는 기제가 작동된다. 하나의 소실점 혹은 프레임으로 수렴되는 모더니즘 회화와는 달리, 안상훈은 작업에서 ‘회화적인 것’을 보다 확장하고 새로운 상황에 회화를 위치시키는 것 같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그의 회화는 시각적 경험에 국한하기보다는 신체적 경험에 가까운 효과를 제공하는데 이는 기억이나 정서보다는 감각적인 차원으로 존재한다. 즉흥적인 행위와 우연적인 과정을 따르고 가변성의 영역을 더욱 확대하고 있는 것을 보면 회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존 인식과 단선적인 질서를 그다지 신뢰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회화라는 외피에 잔존하는 관습을 없애려는 시도는 이전 작업에서도 보여준 바다. 안상훈이 자신의 화면에서 구상적인 것을 배제하기 시작한 것은 언어로 명확하게 설명 가능하고 고정된 내용으로 포획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우고자 했던 노력이었다. 선과 면, 색 등 회화의 조형적 요소의 사용 자체에 집중하면서 그의 화면은 추상성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작품에서 언어적 의미를 차단하려는 시도는 작품의 제목 짓기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작품 사진을 촬영할 때 카메라에 생성되는 일련번호를 구글에서 구동시켜 나타나는 검색 결과 중에서 임의로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작품의 제목을 짓는다. 작품 내부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는 무관한 외부 기계장치로부터 우연히 획득한다. 내러티브를 차단한다기 보다 회화의 이미지와 내러티브가 새로운 관계로 편집된다는 말이 적절한 것 같다.
회화라는 장르적 질문이 유효하지 않은 시대 안상훈의 매체적 분투와 조형 실험은 매체 탐색 이상의 무엇을 가져다줄 것인가? 자신이 예술적 과제로 설정한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속에서 그는 동어반복의 순환 궤도 이상의 의미를 어떻게 획득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질문들과 함께 전시를 관람했다. 내가 찾은 실마리는 가변적 상황과 응고되지 않은 과정, 그것이 주는 확언할 수 없는 감각의 총체였다. 그것은 지난봄에 진행한 작업 <매일 매일 프로젝트: 오픈 윈도우 아틀리에>에 담긴 감각의 연장선 속에 있는 것이다. 작가의 그리는 행위를 통해 응고되지 않은 회화의 지난한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일상의 개별성을 회화라는 보편의 이름에 편입시키는 과정이었다.
근래 안상훈은 가변적이고자 하는 지향을 점점 더 정확하게 실행해 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 ]
이정은
전시: 모두와 눈 맞추어 축하인사를 건네고
기간: 2018.09.10 – 2018.09.28
장소: 인천아트플랫폼
작가: 안상훈
주최: 인천아트플랫폼
참고: 2017 IAP 올해의 입주작가 개인전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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